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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과학 혁명은 다른 사상분야에 어떻한 영향을 미쳤는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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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과학 혁명은 다른 사상분야에 어떻한 영향을 미쳤는가?

chemica 2014. 12. 16. 17:02

17세기 과학혁명은 다른 사상분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배질 윌리

   

어느 한 세기의 조감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하나로 이어지는 지역 또는 풍경처럼 그 것을 높은 곳, 예를 들어 비행기 위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한다면 아주 편리하다. 이런 방법으로 17세기를 좀망하면 이 세기의 초기와 말기의 풍경, 그리고 기후까지도 매우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즉시 눈에 띨 것이다. 처음에는 산맥과 급류 그리고 폭풍우가 맑은 날씨가 교대되는 장관이, 더 나아가면 토지는 완만하게 경사져 풍부하게 경작된 평원이 펼쳐지고, 그 사이에 고개나 절벽으로 갈라져 있기는 하지만 마침내 넓은 강으로 관개되 있고 공원이나 저택으로 수놓인, 항상 햇빛이 내리쬐는 전원을 볼 것이다. 산줄기 뒤로 중세의 알프스에 연결되 있고 평원은 앞으로 거의 중단됨 없이 우리들 시대로 이어져 온다. 오해가 생기기 전에 이 비유를 끝내면서 우리는 17세기가 과도기라고 말할 수 있는데, 물론 어떤 세기든 다 과도기라 할 수 있지만 17세기에는 중세와 현대 세계 사이에 가로놓여 있기 때문에 다른 어느 세기보다 이러한 명칭을 붙일 만 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세기에 인간이 그가 살고있는 세계에 대한 사고방식에 있어서 역사상 가장 큰 변화가 일어 났다.

   

나는 우연히 문학에 먾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데, 내가 이 세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섹스피어와 단에서 시작해 밀턴으로 이어지고 드라이덴과 스위프트로 끝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즉, 정열, 모순, 상상, 호기심, 복잡성으로 가득 찬 문학에서 시작해 분명, 정확, 양식, 표현의 명확성이 두드러진 문학으로 끝나고 있다. 이 세기의 말은 소위 <산문과 이성의 시대>의 시작이며 산문을 쓰는데 필요한 자질이 위대한 시를 낳는 자질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마찬가지의 일이 다른 분야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건축의 분야를 예로 들어 보자. 우리들은 모두 엘리자베스 시대류 또는 자코비앙으로 불리는 건축양식을 알고 있다. 그것은 기발하고 이색적이며 때로는 윤곽이 울퉁불퉁 해 고딕과 클래식의 요소를 가끔 혼합한 조각으로 아름답게 치장되 있다. 한편 이 세기의 말에는 렌과 소위 앤 여왕시대의 건축 양식이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는데, 이 양식은 평평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엄격하며 고딕풍의 장식이 없는 순순한 클래식 형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즉, 17세기가 끝나는 중세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의 혼합으로 시작해 현대적 요소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시대에 있어서 현대적이라는 것은 빈번히 클래식 인 것, 즉, 그리스나 로마의 것을 보방하는 것을 뜻하고 있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들은 드라이덴, 포브, 에디슨의 시대를 '아우구스트' 시대라고 부르지만, 이 시대를 사람들은 실제로 자기들이 - 아우구투스 황제 시대 - 계봉과 학문과 진정한 문명의 시대 - 와 비슷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암흑과 수도원 냄새가 나는 중세의 오류와 미신으로부터 빠져 나온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다. 고대인처럼 쓰고 만들고 생각하는 것이 이성적이고 교양있고 우아한 존재, 즉 승려의 엊=어두움을 포기하고 시장이나 커피가게의 밝은 빛을 선택했다는 것을 뜻했다. 만일 과학자(또는 자연철학자)라면 고대의 수많은 이론,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배척허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아무것도 그대로 믿지 않음로써 문자가 아니라 정신면에 있어서 고대인을 본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두 가지 흥미롱ㄴ 분야인 정치와 종교에 대해서 잠깐 고찰해 보기로 하고 우선 정치부터 시작하자. 여기에서 또한 이 세기가 왕당과 의회당으로 시작해서 토리당과 휘그당으로 끝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말하자면 이는 유혈없이 해결 볼 것 같지 않은 심각한 격보와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불화에서 시작해 단 두개의 정당 - 물론 주의는 달리하지만 사회적으로 하나이며 평화적으로 손쉽게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정당 - 의 대립으로 끝나고 있다. 하노버 왕조가 스튜어트 왕조를 계승한다는 말 이상으로 무엇을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있을까? 왕의 신성한 권리라는 말은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고 다나조롭지만 평화적인 발전을 위한 무대가 마련된다. 마찬가지로 종교에 있어서도 처어교도와 영국 국교도 간에 오랜 투쟁으로 이 시대의 막이 열리고 그것을 내란을 통해 계속돼 광신과 박해와 추방 그리고 적대시하는 여러 종파의 증가가 수반되 일어났으나 그것은 관용법과 이신론자와 그 반대자와의 사이의 비교적 차분한 논쟁, 즉 자연도 결국 성서 이상으로 명확한 신의 증거가 되지 않을까의 여부와 양심이 종교적 신조보다 안전한 지도자가 되지 않을까에 대한 논쟁으로 끝냊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어느 분야를 보던지 표현으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즉, 역사의 망령은 사라져 가고 있으며 암흑과 폭풍은 대낮의 밝은 빛의 자리를 양보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한 문제들이 해결되든가 또는 걷어치워지게 되고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조화와 번영 안에서 함께 살 것인가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풍경을 일별하기만 해도 이들 변화에 대한 설명을 찾고 싶게 할 것이다. 이들 여러가지 발전들이 서로 상충되 있다면 몇 가지 상이한 원인으로 설명 할 수 있지만, 그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공통된 배경 원인으로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역사적 변화를 설명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떠한 사람들은 경제적 원인이 모든 사물의 근저에 있고 사람이 생계를 영위하는 방법이나 부가 생산되고 분배되는 방법이, 사람이 어떻게 사고하고 쓰고 숭배하는 가를 결정한다고 믿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물질적 조건보다는 오히려 사상이 역사를 지배하는 것으로, 또한 어느시대에 있어서나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그 새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진실 이라고 믿었는가, 그리고 그들이 선호했던 철학과 종교는 무엇이었나에 있다고 믿고 있다. 양쪽 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우리는 좀더 단순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근대사에 있어서 최대의 지적 변화가 17세기 중에 성취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변화가 앞에서 언급했던 여러 분야의 평행적인 움직임을 설명 할 수 있는 종류일까? 그것은 산문과 이성으로 또는 고전주의, 계몽, 관용으로 향하는 추세를 조장하거나 또는 방해앴던가? 이 크나큰 지적 변화야 말로 과학 혁명이라고 일러져 있는데, 필자로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예라고 생각한다.

   

이 혁명에 대해 기술하거나 그것을 가져 온 위대한 발견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본인의 임무가 아니다. 본인의 임무는 단지 그것이 인간의 사상, 상상 및 감정 그리고 따라서 인간의 자기 표현 방법에 미친 영향들을 고찰하는 데 있다. 여러가지 발견들 - 본인은 주로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과 갈릴레이가 탐구하고 뉴턴이 완전히 적립한 운동의 법칙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 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줘서 사물이 평소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는 것과 살고 있는 세계는 그때까지 그렇게 생각되게끔 가르쳐 왔던 것과는 실로 전연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옛적 세계상인 투명한 천구는 분쇄되고 지구는 공간에 떠다니는 수망ㅎ은 행성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모든 사람이 이 뜻밖의 새로운 사실을 지오르다노 브르노처럼 열광적으로 맞이했던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예적 세계상이 상식적으로 분명히 진리로 생각됬을 뿐 아니라 성서나 아리스터텔레스에 의해서 확실하게 되고 오랜 기간 교회의 인증에 의해 성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서 갈팡질팡 했던 것이다. 매슈 아놀드가 19세기 상황에 대해서 했던 말은 17세기에도 그대로 적용 된다. 즉, 종교는 그 감동을 어떠한 가정된 사실에 연결시키고 있었는데, 이제 사실이 그것을 무너뜨리고 있다. 단의 유명한 시 안에 이러한 성질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철학은 츼혹 속에 모든 것을 불러 낸다.

불의 원소는 완전히 꺼지고,

태양도 지구도 잃어 버리고, 이제 어느 누구의 지혜로도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가르쳐 줄 수 없다.

   

'불의 원소'뿐만 아니라 하늘가 땅의 구별조차 사라졌다. 이는 달과 그 위에 있는 오나전하고 불멸인 천체와 급보다 아래에 있고 불완전하고 변하기 위운 지상의 물체 사이의 구별을 뜻하고 있다. 새로운 뱔이 나타나서 하늘도 변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 했고 만원경이 달의 표면이 불퉁불퉁 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래서 토마스 브라은 경은 이렇게 쓸 수 있었다.

   

'우리와 천공에서 불멸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는 도중에 그것이 지구와 똑같은 것, 즉 주된 부분은 영속되지만 부분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발견된다. 이 일에 대해서 혜성과 신성과 투시도(즉, 만원경)가 말하기를 시작하고 태양의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흑점이 파에톤(태양의 아들)의 허락을 받아 분명히 판결을 내릴 것이다.'

   

이들 새로운 개념이 사람의 마음에 침투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은 당연한 일인데, 밀턴은 아직도 예전의 천문학이나 새로운 천문학이나 모두 똑같이 받아 들일 수 있는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여하간에 이 세기의 후반에는 코페르니쿠스의 체게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 졌다. 또한 그 당시에 지상의 물체를 지배하는 법칙도 발견되었는데 마침내 뉴턴에 의해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경우에 적용되는 법칙이 행성이 그 궤도를 유지하는 법칙과 꼭 같다는 것을 밝혔다. 이러한 거대한 통일적인 관념을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은 곧바로 신, 자연, 인간 및 그들 사이의 관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의 초점을 전혀 다른 곳에 맞추게 하는 것이었다. 하늘이든 땅 위든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은 제 1기관을 통해서 작용하는 신의 힘이나 천구를 통제하는 천사의 예지가 그 원인이 될 수 없고, 수학적으로 계산 할 수 있는 인력을 그 원인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우주는 결국 거대한 기계이며 가장 엄격한 역학과 인과 법칙에 따라서 공간과 시간안에 움직이고 있는 물질적 성분으로 구성되 있다는 것이 판명됬다. 즉,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결과는 각각 물리적인 원인이 있기 때문에 신이든 악마이든 모든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할 여지도 필요 없게 되었다. 모든 현상을 물질과 운동에 의해서 해석할 수 있게 됐고 수학적으로 설명 또는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제임즈 진즈 경이 말한 바와 같이 '위대한 인과성의 원리는 다년간의 연구 끝네 나온 것이다. 점차 그것이 무생물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법칙의 최종적인 확립은 17세기, 즉 위대한 갈릴레이와 뉴턴의 세기의 승리였다.' 그러나 아직 수리 물리학이 모든 분야를 정복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화학 마져도 정밀하지 못했으며 생물학이나 심리학은 말할 필요 조차 없었다. 그러나 뉴턴은 '다른 자연 현상도 같은 종류의 추론에 의해서 연역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는 그것이 가능하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본인은 방금 이 '새로운 철학(그렇게 불렀다)'의 직접적인 결과를 몇 개 열거 했다. 이들 중 궁극적 효과를 간단히 언급하므로써 결론을 맺고자 한다. 첫째, 그것은 모든 전톹에 대한 불신, 즉 단순하게 권위에 의해서 인정되는 것만으로서는 아무것도 진실 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오로지 실험과 검증을 거친 후에야만 진실로 인정하겠다는 결심을 낳게 했다. 중세 신학자의 철학을 배척했던 베이컨, 세상의 오류나 미신(예를 들어 두꺼비의 머릿 속에는 보석이 들어 있다던가, 코끼리의 발에는 관절이 없다던가 하는 것에 대한 믿음)을 폭로하는 긴 문장을 썻던 브라운, 심지어 자기 자신의 감각 까지도 명백하고 확실한 무엇인가에 도달하기까지 모든 것을 의심하리라 결심하고서 마침내 그것을 사고하는 존재로서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데카르트 등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리하여 17세기의 주된 지적 과제는 오류로부터 진실을, 허구로 부터 사실을 식별해 내는 일이었다. 점차 자신감 그리고 환히감마져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주는 더 이상 신비하거나 두려운 것으로 보이지 않게 됐으며,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은 설명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혜성, 일식, 월식도 이제는 재앙의 전조라고 해서 무서워하지 않게 됬으며 또한 요술은 어리석은 이야기로 추방됬던 것이다. 이 새로운 안심감은 포프가 쓴 뉴튼의 묘비명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자연 그리고 자연의 법칙이 밤 속에 가려져 있었다.

신이 말하기를, 뉴튼이 있으라! 그리고 모든 것이 밝아 졌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인간의 종교적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그 결과는 다윈주의가 19세기의 종교에 미쳤던 그것과는 매우 상이했다. 17 세기의 과학은 창세 때의 신의 예지와 증ㄱ를 보여줌으로써 신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됬다. 실제로 종교상의 신은 인격적이고 항상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오히려 추상적인 제1원인으로서 생각돼 왔다. 이 위대한 기계는 위대한 기능인을 암시하고 있었으나, 신은 기계를 만들고 그것을 움직이게 한 후, 소위 적극적인 감독자의 역할에서 은퇴해 간섭함이 없이도 그 자체의 법칙에 따라서 움직여 가게 내버려 뒀던 것이다. 그러나 계승되어 왔던 종교적 감정이 아직도 강렬했던 그 당시에 있어서는 자연을 통해 신을 우러러볼 수 있다는 생각은 과거의 최악의 유산중의 하나, 즉 종교상의 논쟁과 종파간의 아집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처럼 생각됬다. 종교는 내부적인 투쟁으로 위협을 받아 왔다. 교회들이 서로 반목하고 있을 때에 사람이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새로운 과학에 의해서 무장한 현세적이고 이성적인 정신이 전통적인 신앙의 기초를 뿌리째 파헤치기 시작했다. 만일 자연적이고 물리적인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면 성서에 기록된 초자연적이고 기적같은 일들은 어떻게 될까? 이것은 온전하지 않은 사상이었으나, 17세기에도 성서에 인용된 어떤 이야기가 과연 문자 그랟로 진실인지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적적인 요소에 대해 공개적인 공격을 가해 구약성서의 여호와의 위치를 낮춰 철학에 있어서의 '최고 존재' 또는 '제1원인'에 비교하는 일은 18세기로 넘겨졌다. 당분간 과학이 단순히 신 자신이 작품의 연구에 종사하는 것 뿐이며, 그것을 노출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그 만큼 우주의 설계자인 신의 전능한 기술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과학은 경건한 것으로 생각 될 수 있었다. 에디슨은 이러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저 높은 광대 무변한 창공

에테르로 가득 한 푸른 하늘

반짝반짝 빛 나는 천공, 빛나는 틀

모두 그 위대한 원형을 나타내도다.

지칠 줄 모르는 태양은 날마다

그 창조주의 힘을 나타내고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널릴 알려 주네.

전능한 자의 손으로 만든 작품을.

   

과학은 또한 신에 직접 접근 할 수 있게 했는데 반해 교회나 교리는 사람들을 불안감과 어려움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점과 의문점이 일어나 널리 퍼져 있었던 낙관론을 교란시켰다. 만일 우주가 물질로 된 기계적인 것이라면 인간은 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인간은 지금까지 항상 자유의사를 갖고 있으며 불멸의 영혼을 갖고 있다고 생가되 왔는데, 이것은 결국 환상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이 문제에 부딪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홉스는 영혼이 육체의 한가지 기능에 불과한 것이라며 의지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 더 직접적으로 심각해진 것은 특히 시와 종교에 대해서 모든 상상의 산물이나 영적인 직관력을 그릇된 것 또는 허구라고 해서 도외시 하는 새로운 경향이었다. 모든 실재하는 것은 수리 물리학에 의해서 운동하는 물질로 기술 할 수 있고 그렇게 기술 할 수 없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 또는 아직 사실대로 설명되지 않은 것들 이었다. 시인과 승려들은 오랫동안 헛된 공상으로 우리를 속여 왔으며, 이제야 말로 그들 대신 과학자와 철학자가, 스프라트가 왕립협회의 회원에 대해 '적나라한, 있는 그대로의' 방법으로 행돌할 것을 요구한 바와 같이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수학적 명확성'에 접근시켜야 할 때인 것이다. 시인은 헛소리 할지도 모르며 승려들은 우리를 미혹시킬지도 모르지만 지각있는 사람이면 그들을 무시하고 양식과 냉적하고 산문적인 증명을 선호할 것이다. 당시 철학 (지금 우리들이 과학 이라고 부르는 것도 포함되 있다) 이 시의 목구멍을 잘라 버렸다는 말도 있었다. 이는 당시에 좋은 시가 창작될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지만 여하간 드라이덴과 포프는 훌륭한 시인 이었다. 그러나 모두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상상력이 부족했다. 그들의 장점은 그 새대의 장점, 즉 양식, 기지, 명석, 날카로움과 요점 이었다. 그로부터 100년 후 낭만주의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몇 명의 지도적인 시인이 과학은 우주를 죽이고 인간을 이성 있는 기계로 바꾸어 놓았다고 아우구투스 시대의 사람들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그들의 일반적인 감정은 철두 철미하게 합리적이고 적절하게 설명되고 경건하게 설명되며, 또한 한 영국인에 의해서 서러명된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하는 만족감 이었다. 현대에 있어서의 진보에 대한 신앙은 이 무렵에서 발단하고 있는데, 그 이전의 완성은 고대에 있었고 그 이후는 역사는 긴 내리막길이라고 생각됬다. 그러나 이제 베이컨, 보일, 뉴턴, 롤이 등장해 고대를 훨씬 능가했다는 점을 누가 부인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이제야 말로 예전에는 불가능 했던, 환경을 지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됬으며, 미래에 인간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지 않다고 누가 말 할 수 있을까? 비록 우리가 상시의 과학의 승리가 인간의 보다 훌륭한 능력을 희생해 얻었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들은 그것이 수많은 좋은 선물, 즉 관용, 합리성, 공포와 미신으로 부터 해방도 함께 가져왔다는 것을 꺼리낌없이 인정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시대의 일시적인 자기 만족을 용서하고 나아가 부러워하기까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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